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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목사님에 대한 회고
원성웅 목사(서울연회 직전 감독, 옥토교회 담임)
2021년 7월 27일은 고(故) 이진호 목사님이 태어나신 지 100년째 되는 날이라 합니다. 고인의 아드님이신 이광윤 선교사는 저와 배재 고등학교 동창인데, 학창시절에는 그의 아버님이 훌륭하신 목사님인 줄 몰랐다가 내가 목사가 된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1973년도에 배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78년도 봄부터 81년도에 안수 받고 공군 군목으로 나가기 전까지, 경기도 동두천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총각 전도사로서 동두천 외곽 사동 초등학교 근처에서 ‘복된 교회’를 개척하여 열심히 목회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어린 아이들이 교회로 많이 모여왔는데, 여름성경학교 때는 100명이 넘게 모였고, 중고등부 학생들은 40명, 청년들도 30명이나 모이던 재미있던 첫 목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옆에는 수천, 수만 마리의 닭을 먹이는 양계장들과 소먹이는 목장, 돼지 키우는 양돈 농가들도 있어서 악취와 더불어 파리 떼가 엄청나게 꼬이던 참으로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된 교회를 중심으로 그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모여와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연극과 찬양과 수련회를 열기도 하면서 아주 즐겁고 보람된 목회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석사학위 논문도 준비 하면서, 다니엘서 같은 성서 주석서나 루터의 시편 강해 같은 책들을 번역하여 번역료를 받아 개척 목회의 특별 교육비로 보태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우리 감리교회의 서울 동지방회에는 60여개의 교회들이 소속해 있었는데, 동대문교회로부터 충신교회, 돈암교회, 미아동교회, 우이교회, 도봉교회, 의정부 교회, 그리고 동두천교회, 연천교회 군남교회... 들이 있었고, 그 교회들 중에 제일 작고 막 개척된 교회가 내가 담임한 동두천의 복된 교회였습니다.
그 이후로 43년이 지났으므로 그 당시의 어른 목사님들은 지금은 많이 돌아가셨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분들로는 동대문교회의 오경린 감독님과 충신교회의 이재선 목사님, 원연기 목사님, 이진호 목사님, 신경하 목사님, 김종훈 목사님과... 특별히 돈암교회의 이진호 목사님에 대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진호 목사님은 서울 동지방의 감리사를 역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생각해도 쟁쟁하신 목사님들이 당시의 서울 동지방에 속해 있었고, 다른 젊은 목회자들도 여럿 있었는데, 당시에 저는 서울 동지방에서 제일 막내 전도사로서 선배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목회를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도 한 달에 한 번씩 지방 교역자 회의를 열었는데, 이진호 목사님이 담임하고 계셨던 돈암교회에서도 교역자 회의가 열려서 그곳에서 성도들로부터 융숭한 식사대접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내 기억으로는 이진호 목사님은 좀 호리호리 하고 마른 체구이셨는데, 말씀을 참 조리 있게 잘 하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진호 목사님은 누구보다도 감리교회의 법과 제도와 질서에 대하여 일가견을 가지신 분으로서... 어떤 일로 목회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져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에는 언제나 이진호 목사님이 앞에 나오셔서 이치를 밝히 가르쳐 주시고 설명하시고 나면 얼굴 붉히던 논쟁이 잠잠하게 되곤 했습니다. 이진호 목사님은 목회로도 모범을 보이셨고 설교도 은혜롭게 잘 하셨으며 목회자들의 모임을 화평케 이끌어 주셨던 어른이셨습니다.
최근에, 저보다 10년 전에 서울연회 감독을 지내신 윤연수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분도 이진호 목사님에 대한 기억을 저에게 해 주셨습니다. “이진호 목사님은 참 말씀을 잘하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셨다” 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전도사시절에 가졌던 이진호 목사님에 대한 생각은 “우리 감리교회 안에 저런 어른 목사님이 계시니 이단이나 어설픈 정치꾼이 설 자리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때에 비하면 오늘날 감리교회 목회자들의 학력이 높아지기는 했어도 우리 감리교회가 그 때에 비해 많이 흐트러지고, 말도 안 되는 소송과 부당한 재판들이 벌어지고 있고, 감리교회다운 품격과 전통과 규율들이 너무 많이 허물어지고 수준이 낮아졌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원인은 이진호 목사님 같은 대쪽 같고 격조 높은 어른이 아니 계심으로 인해 이런 어지러움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진호 목사님의 아드님이신 이광윤 선교사와 저는 배재 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특별한 우정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제 딸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 L.A(세리토스)감리교회 주일 예배 때에 플롯 연주를 한 후로, ‘친구 원 목사의 딸’이라는 특별한 배려로 필라델피아의 자택으로 초청해 주어 ‘시티 투어’도 시켜주시는 등...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배재 고등학교 동문들은 이런 면에서 특별합니다. 현재 저의 아들은 인도 뭄바이 슬럼가의 선교사로 섬기고 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중에 잠시 귀국하여 쉬다가 미국을 거쳐 인도로 복귀하기 전에, 역시 배재 동문인 워싱턴의 홍계호 장로 댁에서 잘 쉬게 되었고, 홍 장로 부부가 뉴욕과 나이야가라 폭포를 여행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으니... 이처럼 배재 동문들은 친구의 자녀들까지 자기 자녀들처럼 돌봐주는 아름다운 우정의 친구들이라 생각됩니다.
내 친구 이광윤 선교사의 아버님이 감리교회의 훌륭하신 대 선배목사님이셨다는 것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며, 아버님은 이미 천국에 가셨지만, 친구를 통해서 이렇게나마 감사와 존경의 마음도 전하게 되어 고마울 뿐입니다.
고(故) 이진호 목사님의 가문이 ‘믿음의 명문가문’으로 세워져서 대대손손 아름다운 복음과 사랑을 증거 하는 가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1년 7월 27일
코로나 정국에 맞서 교단을 이끄신 원감독님의 영상을 올립니다
https://youtu.be/bwP9fT53zVA